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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 오랜만입니다] 가스기술사 1호 한국가스안전공사 김병후 前 연구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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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가스기술사회 작성일19-05-09 10:56 조회2,3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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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신문=이경인 기자] “가스기술사는 1987년 첫 시험이 시작됐지만, 최종 합격자가 배출되지 못했습니다. 이듬해인 1988년 가스기술사 시험에서 뒤늦게 도전, 최종 합격되면서 국내 1호 가스기술사 호칭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1988년 가스기술사 최종 합격자는 2명이었다.)
김병후 전 가스안전공사 연구처장(72세)은 지난 1988년 가스기술사 시험에서 최종 합격하면서 국내 1호 가스기술사로 등극한다. 이후, 가스기술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재 가스기술사는 340여명으로 성장했다.

당시, 가스기술사 1호 취득 이면에는 약간의 운(?)도 따랐다.

1987년 가스기술사 시험에서 1명이 필기시험을 통과했지만, 면접시험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가스기술사 1호가 배출되지 못한 것이다. 김 처장은 이 때 떨어졌던 응시생과 함께 1988년 시험에 최종 합격하게 된다.

만약, 1년 전 시행된 시험에서 최종 합격자가 나왔다면 가스기술사 1호의 영광도 다른 사람의 몫이 될 뻔한 셈이다.

김 처장은 “현장에서의 경험과 안전분야 기술자격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가스기술사를 취득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 뒤 “하지만, 아직까지 소방기술사와 건축기술사에 비해 가스기술사의 업무영역이 제한된 점은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1976년 ㈜풍산에서 화학류 안전관리자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병후 처장은 재직기간 중 화학류제조와 안전관련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1982년 한국가스안전공사에 간부경력직으로 입사한다.

“1980년 초반 당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가스안전에 대한 정부지원이 늘어나면서 가스안전공사가 공기업으로 전환됐습니다.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는 주택 200만호 건설과 같은 정책이 시행되면서 가스시설 안전관리와 감리제도가 크게 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대규모 주택건설이 시작되면서 개별 가스보일러 사용이 늘어났고,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계기로 가스보일러 설치도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달리, 가스보일러 설치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탓에 CO중독으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김 처장은 가스안전공사 기준처에 근무하면서 배기가스로 인한 CO중독사고 예방을 위해 가스보일러 설치기준 마련에 동참하게 된다. 이후, 강제급배기식 가스보일러 설치기준이 마련되면서 공동연도사용으로 인한 CO중독사고를 크게 감소하게 된다.
하지만,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1994년 서울 아현동 가스공사기지 폭발사고와 1995년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사고를 계기로 가스안전공사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95년 대구사고를 계기로 가스안전공사의 외형이 크게 확장되고, 연구원이 설립되면서 현재의 체재를 갖추게 됐습니다. 당시, 실무자로 가스안전시험연구원 설립과 가스안전공사의 국가교정검사기관 지정 등의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김 처장의 노력덕분에 가스안전공사는 1997년 국가교정검사기관에 이어 전기방폭성능검사기관(1998년), ISO 9000 인증기관(1999년)으로 연달아 지정된다.

그리고 IMF 영향으로 가스안전공사에서도 명예퇴직 바람이 불었고 1998년 김 처장은 16년간 근무했던 가스안전공사를 떠나게 된다.

이후, 금속플렉시블호스 제조업체인 코뿔소에서 기술이사로 근무한 뒤, 지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산업특수가스협회 전무로 근무하게 된다.

특수가스협회 재직 중에는 특수가스용기 재검사 편의를 위해 내압‧가압검사방법에 초음파탐상시험이 가능토록 제도개선을 이끌어 냈다.

이경인 기자 oppaes@ga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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